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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랜드 미사일 위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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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 개요 == > 고랜드 북부의 미사일은 6분이면 벨포르에 닿습니다. 우리는 6분짜리 평화 속에서 살 수 없습니다. >---- > 1988년 10월 22일, 리처드 앨런 베인브리지 루이나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 1988년 10월 14일 루이나의 정찰기가 [[고랜드]] 북부에서 [[사비에트]]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진지를 포착하면서 시작되어, 10월 28일 사비에트가 미사일 철수를 발표할 때까지 두 나라가 군사적으로 대치한 사건. 위기는 [[사비에트-고랜드 전쟁]]의 막바지, 사비에트군이 제네바 협정에 따라 고랜드에서 철수하던 도중에 일어났다. 철군에 반대하던 사비에트 군부는 철군 이후 고랜드 공산 정권을 지킬 보험으로 잔류 병력 약 5만 명과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고랜드에 남기는 「둑 계획」을 철군의 조건으로 관철했고, 이를 제네바 협정이 허용한 '동맹국에 대한 무기 공급'으로 포장했다. 루이나는 이를 협정 위반이자 루이나 본토와 [[유고랜드]]를 겨냥한 기습 능력으로 규정했다. 고랜드는 사비에트와 육로로 이어져 있어 바다를 막는 것만으로는 미사일의 반입을 멈출 수 없었다. 루이나는 해상 검역과 비행금지 선포, 유고랜드 전진 배치, 막 발효된 [[센츄리움 궤도협정]]의 이행 정지 경고를 겹쳐 사비에트를 압박했다. 2주 동안 국경에서는 무자헤딘의 매복과 정찰기 격추가 잇따랐고, 궤도에서는 두 나라의 요격 전력이 다시 서로를 겨누었다. 위기는 10월 28일 사비에트 서기장 [[보리스 카멘스키]]가 미사일 철수와 잔류군 계획의 폐기를 발표하면서 끝났다. 겉으로는 사비에트의 일방적인 후퇴였지만, 그 뒤에는 루이나가 고랜드 정부에 대한 불침과 유고랜드 배치 전력의 철수를 약속한 비공개 양해각서가 있었다. 이 각서는 이듬해 [[루이나 헌정 위기|3.29 헌정위기]] 이후 [[리처드 앨런 베인브리지]]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. 위기를 '조건 없는 철수를 받아낸 승리'로 선전하며 3선 출마의 명분으로 삼았던 베인브리지의 주장이 사실과 달랐던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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